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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후기/책 2019. 7. 14. 17:15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책을 읽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상황일 땐 주로 가벼운 책을 집어든다. 머리 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넋 놓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또 아까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성향 때문에 짧게는 한 달에 한 번, 길게는 반 년에 한 번은 적당히 가벼운 책을 찾아 헤맨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알라딘 중고서점을 서성이다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다. 금요일마다 재미있게 읽고 있는 퍼블리의 뉴스레터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책이었다.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에 대한 팬심과 호기심보다는 오로지 퍼블리에 대한 믿음으로 한 페이지도 넘겨보지 않고 구매했다. 무엇보다 과감한 구매의 원천은 장르와 작가의 배경을 생각해 봤을 때, 적당히 가벼운 책 일거란 추측 때문이었다.

    책을 구매한 지 정확히 3일 째 되던 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있었다. 약 300페이지 분량의 책이니까 하루에 100페이지 이상을 읽은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조금의 야근도 곁들이며, 좋은 구절을 일일이 메모하고 읽은 것 치고는 꽤 빠르게 읽은 것이다. 나는 그리 체계적이고 꼼꼼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동시에 메모를 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이게 쉬워보여도 생각보다 상당한 노력과 인내심을 요한다. 메모를 하며 책을 읽으면 독서 속도가 더뎌지는 것은 물론이고 항상 적을 무언가가 있는 상태에서 독서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대 이상으로 책이 좋았다. 퍼블리에 대한 내 애정과 믿음은 깨지지 않았고, 배우, 또는 영화감독, 또는 화가, 또는 걷는 사람인 하정우가 가진 삶의 태도에서 많은 점을 배웠다. 한 가지 단점은 '핏빗 알타'를 사고 싶어졌다는 것...(!) 왠지 핏빗 알타만 있다면 좀 더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마저 잠시 들었지만, 다행히 아무 것도 구매하지 않고 무사히 책을 덮었다. 아직은 저녁에는 선선한 여름이니, 머리 질끈 묶고 잠깐이라도 걸으러 나가봐야겠다. 아래, 특히나 내가 좋다고 느꼈던 삶에 대한 하정우의 태도와 생각을 적어두었다.


    p.29

    기분은 무척 힘이 세서 누구나 기분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순간의 기분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내릴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단지 기분 때문에,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 맥없이 하루를 날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불쾌한 기분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면서도 당장의 기분에 지배당하는 삶을 산다. 사실 기분은 인생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의 기분을 바꿀 수 있다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기분. 알고 보면 우리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고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일들의 결과와 행로까지 좌우하는 이 문제적인 놈.

     

    p.78

    (...) 이제는 '귀찮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 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p.79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p.82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p.120

    시간을 오래 들여야 쌓이고 깨우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초반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초조함에 짓눌리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 요행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p.141

    요리는 일단 시작하면 내가 부엌에서 손을 움직인 만큼 내입에 돌려준다. 세상에 내가 선택하는 만큼, 움직이는 만큼 곧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요리는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내 몸에 고스란히 보답을 해주니 쉽고 재밌어서 자꾸 뭘 더 해보게 된다.

     

    p.189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언령'이라고 부른다. 언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놓는다. 내 주위를 맴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p.192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 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던 연결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연결돼 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감사는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 나를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이끈다.

     

    p.223

    나는 한번 결정한 일은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 자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자신감을 가지는 것과 자신을 확신하는 상태는 얼핏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문제 같다. 만약 어떤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면 후회나 미련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열심히 보낸 시간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열심히 한 일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p.226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276

    각자가 겪을 슬럼프의 시기와 양상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우리 모두에게 슬럼프는 언제든 찾아온다. 슬럼프란 불운한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라, 해가 나면 드리우는 것처럼 인생의 또다른 측면일 뿐이다. 슬럼프란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에게 슬럼프는 인생길의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주는 스승이다.

     

    p.291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만큼 빨리 벗으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나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p.292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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